김진애,‘인디, 프리, 언더’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을 곧잘 ‘인디, 프리, 언더’로 표현하곤 한다.

‘인디’는 ‘independent(인디펜던트, 독립)’에서 온 말로 ‘인디 밴드, 인디 영화’ 하면 금방 연상될 것이다. ‘프리’는 ‘free'이니 프리랜서라는 말로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언더’는 ‘underground(언더그라운드, 지하)’에서 온 말이다. 임대료 싼 지하실 공간의 작은 클럽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라는 말이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창조적 혁신들이 ‘인디, 프리, 언더’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만 꼽자면, 비틀즈는 전형적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시작하였고, 모차르트는 궁정이나 성당에 속하지 않았던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였고, 미국의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상업주의 영화에 질려서 ‘인디 영화제’를 만들어 독립영화를 지원해 왔다. 

비단 대중예술뿐이 아니다. 학교 시스템, 복지 체계, 환경운동, 인권운동의 혁신들이 모두 인디, 프리, 언더 정신으로 무장된 활동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오늘날의 패션, 요리, 디자인, IT 분야 등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하는 작업들은 모두 인디, 프리, 언더 정신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인류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과학기술혁명과 사상혁명이 인디, 프리, 언더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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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프리, 언더’를 뭉뚱그리자면, 기성의 숨 막힐 듯 갑갑한 체제에 도전하고, 관료주의와 상업주의의 먹이사슬에 얽매이지 않고, 특혜의 고리를 끊어내고 권위주의의 아성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무장된 활동이다. 독립 정신, 자유 정신, 도전 정신, 저항 정신, 전위(前衛) 정신, 실천 정신, 창조 정신이 그 바탕에 있다.   

모두 다 내가 지향하는 속성들이다. 나는 영원히 ‘독립인’이고 싶고, 영원히 ‘자유인’이고 싶고, 영원히 ‘창조인’이고 싶다. 기득권을 보호하고 기성체제를 방어하려는 체제를 혁신하고 싶고, 나와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내가 겪었던 마음고생을 겪지 않고도 전문가답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일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무엇보다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독립인, 자유인, 창조인으로서 사람답게 산다는 느낌을 가지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내가 ‘인디, 프리, 언더’를 지향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학력과 경력 등 나의 이력이 이른바 ‘주류’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겉모습과 달리, 내 속마음은 속속들이 ‘인디, 프리, 언더’다. 사실 나의 속마음은, 이른바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인디, 프리, 언더’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나의 더 깊은 속마음은, 모든 사람들의 깊은 마음속에 ‘인디, 프리, 언더’에 대한 갈구가 있다고 믿는다. 그 갈구와 그 열정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그 갈구와 그 열정을 실천할 용기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일 뿐이다.

(‘인디, 프리, 언더’를 한마디로 뭉뚱그려 나는 ‘야썽(野性, 야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디에서 일하건 비판의식과 혁신에 대한 바람과 변화의 실천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야썽'의 상태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버리지 않아야 하는,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신선한 성격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때 봉하마을을 찾아...노무현대통령도 인디-프리-언더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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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중의 기득권이라고 불리는 국회, 주류 중의 주류라고 불리는 국회야말로 인디, 프리, 언더 정신이 펄펄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어야 한다. 태생적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가진 곳이 국회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그늘과 아픔의 구조적인 문제를 찾아서 고쳐야 하는 곳이 국회다. 태생적으로 인간의 다원성을 기반으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곳이 국회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기득권에 저항하고,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탐욕적인 상업주의를 적절하게 견제하고, 자유로운 정신과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곳이 국회 아닌가? 한마디로, ‘야썽'이 펄펄 살아있어야 하는 곳이 국회다.  

2009년 11월 5일, 등원연설 했던 김진애

국회에 대한 나의 이런 해석을 ‘순진하다, 꿈도 야무지다’라고 할 사람들도 많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순진한 꿈이 아니라 솔직한 야심이다. 왜 이런 야심을 갖지 못하는가? 왜 이런 야심을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가? 왜 이런 큰 야심을 더욱 키우지 못하는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전된 직후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짧은 소감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리버럴이며 그것이 자랑스럽다.” 

참 간결하면서도 간명하게 자신의 소신과 지향하는 가치를 밝히는 것이 멋지다. 깨달은 인간, 가슴이 살아 있는 인간, 소통하는 인간, 참여하는 인간의 됨됨이를 보여주지 않는가?  

 

 

국회야말로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간이어야 한다. 겉멋 들고 자기 이익 추구하는 데에만 지식을 이용하고, 소수 이익집단을 위해서 당장의 유행에 빠져 지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모여서는 안 된다. 사회와 역사를 조감하는 눈을 가지고, 사회 갈등에 대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그러나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는 머리를 갖고, 열심히 세상과 소통하고 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이 모여야 할 공간이 바로 국회다.    

 당신 마음 속 깊숙이 있는 ‘인디, 프리, 언더’ 정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당신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인디, 프리, 언더’ 정신 때문에 이 기득권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인디, 프리, 언더’ 정신을 갖춘 당신이야말로 국회에서 역할을 할 자격이 있다!

‘인디, 프리, 언더’ 정신이 활짝 꽃 피는 국회를 기대한다. 

*** 김진애 후기

18대 총선 끝나고, 후폭풍도 있습니다. 저는 19대 국회에 없습니다마는, 우리 국회가 야썽이 펄펄 살아있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여러 혐오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그 존재 자체 만으로도 고마운 곳입니다. 숭고한 곳입니다. 부디 국회의 존재 의의가 모든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기를... 

120420 김진애.

위의 본문은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책에 나옵니다. 책도 부디 읽어주시기를

19대 총선에 내보내야 할 4대강 종결자 포스터.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것. 이중,김상희 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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