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서혜림'이 아니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정치 드라마 <대물>은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극 중 주인공 ‘서혜림’과 박근혜 의원을 연관시켜서 “우리나라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캐 나가다가 해고당한 젊은 여기자가, 그 과정에서 사회의 불의와 부정부패 현실에 눈을 뜨고 분노하여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드디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다. 
 
이런 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서혜림’ 역을 맡은 탤런트 고현정의 카리스마가 워낙 도도하여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만화 원작에서 출발했으나 원작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었다고 한다. 2010년 말에 방영되었는데, 우여곡절도 많았다. 초기 4회까지의 열광적인 시청자 반응을 기억하는가? 서혜림이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분노와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가슴이 후련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4회 이후 작가와 PD마저 바뀌어 버렸다. 압력이 없었다는 말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이후의 전개는 신통치 못했다. ‘도대체 왜 서혜림이 바뀌었는가? 서혜림은 이제 분노의 전사가 아닌가? 왜 예쁘고 다소곳한 정치인이 되어 버렸나?’ 같은 시청자 불만이 쏟아졌었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흥미롭게도 서혜림의 모델은 ‘박근혜’가 아니라 오히려 ‘노무현’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었다. 나도 그렇게 보았다. 분노가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발언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에서, 일개 비주류 정치인이 일국의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노무현’의 이미지가 더 겹쳐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박근혜 의원은 서혜림 대통령과는 전혀 다르다. 태생도, 성장 과정도, 집안 배경도, 정치에 나선 동기도, 사회적인 대접에서도,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오직 하나, 서혜림 대통령과 같은 점이라면 ‘여성’이라는 점뿐이다. 
 
“여자는 여자 후보를 찍어야 한다.”

2001년 말 경에 열정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진보 성향의 최보은 기자가 《월간 말》 잡지에 이 같이 기고한 내용이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적이 있다. “여자도 여자 나름이지,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찍느냐? 박근혜가 과연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가? 무턱대고 여성이 같은 여성을 찍는 것이 ‘진보’인가?”라는 논쟁이 뜨거워졌었다.
 
그 후속 글을 요청받고 나는 "첫째, 박근혜만큼 정치적 자산이 큰 정치인은 없다. 둘째, 박근혜는 대통령 감이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내에서 저평가되고 있다. 셋째, 박근혜가 자신의 한을 넘어설 수 있다면 큰 정치인이 될 터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저 한풀이 정치인이 될 터이다"라는 논지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에 쓴 글이었는데, 당시 가까운 지식인들은 “어떻게 박근혜가 대통령 감이냐?”면서 나를 비판하곤 했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인터뷰를 하다 보면 박근혜 의원에 대한 평을 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똑같다. 

...중략...

이 세 가지 모두, 박근혜 의원 자신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극복하기 쉽지는 않다. 알다시피, 자산은 때로 독이 된다. 더욱이 당연히 물려받은 자산은 더욱 치명적인 독이 된다. ‘2세’들이 안고 있는 짐이다. 알다시피 ‘대통령 감이라는 것’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인의 기본 훈련이 부족하고 정책 마인드가 없어서 대통령 감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 알다시피, 개인적 한이란 스스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심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의원에 대해서 어떤 호․불호, 어떤 적극적 지지, 강한 비판이 있건 간에, 향후 일정 기간 동안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의문을 갖게 되고, 더 분명한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 어떤 공적 분노가 있는가? 
- 개인적 한을 공적 분노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 끓어오르는 갈구가 있는가? 
- 꼭 이루려는 가치는 무엇인가? 
- 마음속에 불을 담고 있는가? 
- 정책의 복잡성과 정치의 혼돈성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가? 
- 주체적으로 이룬 일이 무엇인가?
- 기회주의적인 점은 없었던가? 
- 같이 하는 정치적 세력은 어떤 사람들인가?  
- 자신의 운명을 걸겠는가? 


...중략...

박근혜 의원에게 ‘말’이라는 가장 중대한 ‘행위’를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말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이슈에 어떠한 말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침묵이 하나의 말의 행위’라면, 그의 침묵은 석연찮을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예컨대,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임했을 때 대운하를 비판했던 것과 달리,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비판이건, 옹호건 한마디 한 적이 있었던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가? 어떻게 그리 무책임할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의원에게는 어딘지 ‘OB(올드보이)’적 이미지가 풍긴다. 아마도 그 자신보다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이미지가 'OB'적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그 자신이 미래지향적인 인간형인가? 박근혜 의원의 ‘아젠다 설정 능력, 설득력, 추진력’에 대해서 큰 의문부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중략...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의원 외에 수많은 여성 후보들이 대권 후보로 등장하고 있다. 한명숙은 이미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최고위원을 차차기 대선후보로 꼽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이정희, 심상정, 박영선 의원들이 자주 회자되고 가끔은 내 이름도 낀다. 웃자. 열광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 후보를 찍자!’ 하지 않더라도 여성 후보군은 이렇게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11202
김진애 배

얼마 전 제가 쓴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새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아직 책을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책 속의 몇 꼭지를 블로그를 통해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번째 순서로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에 실린 꼭지 가운데 '박근혜 의원'과 관련된 꼭지를 발췌해서 소개합니다. 공식 코멘트를 하실때엔 꼭 원문 전체를 읽고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관련글
: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1,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 
: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2, 노무현 땜에 배린 이유

읽어보시고, 내용이 괜찮고 책의 다른 내용도 읽어보고 싶으시면 꼭! 책을 사서 읽어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12월 7일 오후2시 마포 서울가든호텔 2층에서 열리는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출판기념회'
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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