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가 쓴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새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아직 책을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책 속의 몇 꼭지를 블로그를 통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서점가는 '나꼼수' 출연자들이 쓴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휩쓸고 있더군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나꼼수'에 출연해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크게 '깔때기'를 대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어 그러지는 못하고...

하지만, 12월 7일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출판기념회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때 제대로 '깔때기'를 대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에 실린 꼭지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목에서처럼 저는 '노무현 때문에 배린'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련글 :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1,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

읽어보시고, 내용이 괜찮고 책의 다른 내용도 읽어보고 싶으시면 꼭! 책을 사서 읽어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땜에 ‘배리다’? 

한나 아렌트는 마음 속의 불을 지피는 말을 많이도 남겼다. “하나의 행위로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행위에 잇따르는 행동과 수고로 구성된다. 이 결과들은 무한하다.”(《인간의 조건》, 252쪽) 참, 얼마나 멋진 말인가? 
 
...중략... 
 
노무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한나 아렌트의 ‘행위에 따르는 고통과 수고’가 뼈저리게 다가온다. 또한 그의 행위로 시작한 무한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던가, 얼마나 수많은 반응들이 나타났던가, 얼마나 수고스러웠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의 용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고, 그의 용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켰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우리 사회에 변화를 만들고 싶은 갈망이 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독립적이고 자유인이며 줄서기를 질색하고 합리적인 훈련을 받아온 나 같은 전문가가 과연 우리 사회의 세속적인 정치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투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또 유효한 ‘선택’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행위의 용기’를 얻게 되었을까? 
 
우스갯소리로 종종 “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배린’ 사람 중 하나”라는 말을 하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존재로 인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 현실정치에 참여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 나도 그렇게 ‘배린’ 사람 중 하나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과 나 자신의 세속적 정치 역량의 한계를 아는 까닭에 감히 현실정치권에 몸을 담근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펼쳤던 강한 정치개혁 의지는 ‘나 같은 사람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처음 정치권에 입문할 때는 ‘좋은 정책을 펼쳐 보겠다’는 정책 전문가적인 생각이 우선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마하면서 정책 전문가로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공적 영역에서의 나의 역할을 그렇게 자리매김했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정치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단순히 정책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정치에서 찾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그동안 나름 극복했다고 여겼던 나의 서러움, 울분, 부채의식이 마구 터져 나왔다. 펑펑 눈물을 쏟았던 여느 국민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서러움, 억울함, 분노가 눈물로 나타났다.

‘애쓰는 사람은 왜 더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비주류란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가, 권력을 쥔 세력은 어찌 그리 탐욕스럽고 잔인한가, 강대한 권력에 맞서기란 얼마나 힘든가, 힘없는 사람은 왜 당하고만 살아야 하나, 세상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도대체 뭘 했던가?’ 
 
지금의 나에겐 정치 본연의 역할을 세워야겠다는 의지가 훨씬 강해졌다.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이 마구 솟구친다. 꽤 오래 전 내가 정치에 대해 내렸던 정의, 즉 ‘가장 좋은 정치란 더 좋은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뜻을 찾는 방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18대 국회에 들어오게 된 내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김진애가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111129 
김진애 배

추천의 말
작은 인간, 김진애!
-여균동(영화감독) 

참 안 어울리는 형용이다.

우린 그녀의 정열적인 활약상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아왔다. 무너져내리는 4대강 언저리에서 그녀의 분노와 연민과, 되돌아와 뿜어대던 그녀의 열정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작은 인간, 김진애'라는 표현이 낯설다. 그러나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 작은 인간이라는 말이 인간이기에 가능했던, 그리고 앞으로 가능할 수밖에 없는 인간애가 담겨져 있는 큰 행동가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 김진애라는 사람을 넉넉하게 알지는 못한다. 특히나 정치 근처에 어슬렁거린다 치면 사람들은 도매금으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한마디씩 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닐 게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을 또 다른 권력적 시선으로 폄훼하는 데 익숙하다. 

그녀와의 첫 대면은 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공연 이후였다. 나는 왜 이명박이라는 인간이 여전히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단순히 잘 살 수 있으려니 하는 헛된 망상으로 이명박 류의 독재를 국민이 선택했다고 보지 않았다. 그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읽고 '평범한 악惡'이라는 개념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하여 독재자의 독백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 무관심, 평범한 악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김진애 의원이 이 연극을 반긴 것도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책은 한나 아렌트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반가운 동지를 만난 셈이다.
다시금 그녀의 언행을 유심히 보게 된 사연이다. 

제발 정치인이라 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자. 이는 정치 혐오를, 정치인 속류화를 통해서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려는 술수에 다름 아니다. 나는 김진애 같은 전문적이며 실천적인 지식인이 정치를 한다는 게 정말 고맙고 반갑다. 그리고 그녀의 책을 통해서 삶을, 소통을, 희망을, 분노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좋다.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을 읽어라! 판단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작은 인간, 김진애!
나는 그녀가 한없이 작아져
커다란 시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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