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일의 현장에서 나이로 누르는 것은 아주 유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내 일의 속성상 90% 이상 남성들과 일해서 더 그럴 지도 모르겠다. “나이로 누르니까 좋은데요.” 하면 다들 웃는다. 남성들 사이에서 위계적 권위주의 행사의 도구로 ‘밥그릇 수’가 쓰이는 것과 달리, 남성과 여성이 섞이는 상황에서는 권위 행사를 부드럽게 정당화하는 도구로 ‘나이’가 쓰이는 것이다. 한편 씁쓸한 면도 있지만 유쾌하게 보려면 한없이 유쾌하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일을 하자면 ‘여자’인 것도 서러운 판인데,
‘젊은 여자’라도 못되면 가슴에 못 박히는 상황이 수태 벌어진다.
젊지 않으면 일자리조차 못 얻고, 외모가 더 이상 발랄하지 않으면 박대당하는 경우가 남성들보다 더 심한 편이다. 직업 종류에서도 그렇고 조직 종류에서도 그렇다. 여성의 평균 수입이 남성의 그것보다 아직 60〜70%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이든 여자를 부담스러워하고 자를 대상으로 보는 등 직업과 조직에서 ‘유리천장’은 공고한 것이다. 하물며 성숙한 여자 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줄어드는 것은 성숙한 여성의 사회 역할이 그만큼 좁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통계를 보면 여성의 반이 일하는데, 그 구성은 20대는 늘고 30대는 줄어들고 40〜50대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취업하고자 하는 20대는 늘고, 육아와 일의 양립이 관건인 30대에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고, 육아 스트레스가 완화된 후 컴백 상황을 반영하는 통계다. 이런 통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커리어를 계속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이른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영 아쉬운 일이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우리 분발해보자. 40대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의 평소 소신은 “40대에도 일하고 있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이다. 일하는 40대가 되려면 30대에 각오를 다지고 일해야 한다. 내가 쓴 글 중 블로그에서 인기 높은 “자아 분열적 30대 여성의 건승을 위해서”를 다시 부르짖고 싶다.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창업, 취업 등 압력이 높은 30대에 분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려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야 한다.

20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거품을 경계하고 홀로 설 준비가 탄탄한 20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구만리 같은 인생에서 믿을 것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부모, 친구, 남편, 남자, 동료, 상사, 선배, 후배 각기 자산이 되지만 자신이 홀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도움이 된다. 돈, 외모, 실력, 경력, 체력, 스타일 각기 자산이지만 홀로 설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자산이 된다. ‘아직 시간의 여유가 다소 있을 때’ 자신의 홀로서기 단계를 점검하는 것이 좋다. 홀로서기란 보람과 외로움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50대에 들어온 나 같은 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심심찮게 ‘나이로 누르는 재미’를 누리고 일하는 것도 좋다.


‘남’을 위해 ‘후배’를 위해 ‘사회’를 일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해 일한다는 대승적 의미가 커져서 좋다.

 10대의 가슴 두근두근했던 포부를 간직하고,
20대의 힘겹던 홀로서기를 기억하며,
30대의 분열적 상황을 이긴 배짱을 유지하고,
40대에 일과 삶의 지평이 보이던 내공을 바탕으로,
현역 50대로서 나의 밥그릇 수로 세상과 만나는 것이 좋다.

(저의 두 '정신적 멘토님'의 청년, 장년, 노년 사진들.
왼편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 분위기 좋지요?
오른쪽은 고 박경리 작가님. 젊을 때 얼마나 아름다우셨던지,
하지만 나이들어서는 얼마나 기품 있으셨던지...
'우리는 그렇게 못해' 하지 말고 노력해보지요.^^)

‘젊은 여자’ 취급당하지 않아서 좋고,
‘젊어 보이려’ 애쓸 필요 없어서 좋고,
젊은 이미지로 자리를 부드럽게 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아서 좋다.
물론 여성은 백 살이 되어도 자리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기대 받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를 기대 받는다. 그 기대는 충분히 유쾌하다.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것을 결국은 이기기 때문이다.

여자여, 어느 시대에 당신이 있건 홀로 서고, 당신을 분열시키려는 압력에 굴하지 말고, 현장의 내공을 키우며, 언제나 대승적이고 길게 보기 바란다.
홀로서기를 위한 우리의 의지와 내공이 우리를 지켜주고,
물론 우리의 부드러움과 우리의 아름다움은 영원한 힘이다.

*** 090119 김진애, '나이 듬의 재미'를 음미하며...

지난 주말 "여성이여,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라' 포스팅을 올렸었지요.
격려 받으신 치열하게 일하는 님들의 댓글도 있었고, '군대 안가는 것이 여성에 대한 호의적 차별'이라는 댓글도 있더군요. 경제 바닥이고 일자리 어려운 시절의 남성의 피해의식이 한편 이해되기도 합니다.

위의 글을 '나이로 누르는 재미'라 쓰지만, 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쓰는 것은 아시겠지요. 남성적 권위사회에서 나이로 누르려 들 때 얼마나 피곤해집니까? 어떤 경우에나 '밥그릇 수'로 마구 누르려 들면 피곤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요. 

다행히 그 나이가 충분히 설득력있게 경험과 권위를 느끼게 해주면 좋은데... 그렇치 않을 적도 있고. 그런가 하면 많은 밥그릇 수로 아예 제껴지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때 쓸쓸해지기도 하고... 

여하튼 나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다음 주면 또 나이 한 살 더 먹는 설날... 떡국을 기다리면서... 
새해에는 '한 그릇 더 먹은 나이로 어떻게 나이로 누르는 재미를 맛보나?' 
하는 공상도 해 보도록 하지요. 

서로 힘든 때에 서로 보듬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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