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학 강연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메시지는 흥미롭게도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라” 라는 말이었다.

뒤풀이 식사에서 한 남자 교수가 딸이 팀 작업을 한다며 매일 늦고 밤을 새운다고 걱정을 하자 다들 “그게 바로 ‘호의적 차별’이야!”라며 이구동성으로 공감을 표시해 줬다.

호의적 차별이란?
‘여자라서 봐줘야 한다’면서 요모조모 방식으로 ‘본격 업무’에서 '은근히' 소외시키는 것을 말한다. ‘야근 빼주기, 철야 빼주기, 쉬운 일 맡기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 맡기기, 지원 업무 맡기기, 돈과 조직에 관련된 일에서 빼주기, 스트레스 많은 대외 업무에서 빼주기, 아이들 걱정 해주기, 남편 걱정 해주기, 시댁 걱정해주기‘ 등등이다.

호의적 차별은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여성에게 다가온다.
채찍이기 보다는 당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채찍이 빠진 당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남성들의 ‘악어의 눈물’일 수도 있다. 여자들은 당장 안팎으로 시간에 쫓기고 안팎 업무에 시달리는 지라 이런 호의적 차별에 자칫 넘어갈 위험도 농후하다.

호의적 차별에 안주했다가는 크게 또 길게 못자란다.
일의 노하우란 결코 업무 시간 안에만 쌓이는 것은 아니다. ‘비포’와 ‘애프터’의 시간 투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쓸데없는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네트워킹, 호흡 맞추기, 정보 얻기, 새로운 역량 훈련 등에 필수적이다. 이 세상에 중요한 일 치고 어렵지 않은 일이 없다. 중요한 일 치고 시간 압력이 크지 않은 일이 없다. 실제적인 시간 투입이 많다기보다도 24시간 대기할 수 있는 태세를 요한다. 중요한 일 치고 돈과 조직과 대외 업무에 관련되지 않은 일은 없다.

그러니 정답고 따뜻한 말에 속아서건
아니면 당장의 피곤함을 피하려 해서건.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라.
나는 혹시 나 자신 여성들에게 호의적 차별을 하지나 않나 항상 경계한다.
나 자신이 호의적 차별을 받는 것도 물론 경계한다.
여성의 피곤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나 역시 피곤하기 때문에 자칫 넘어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의식하면 우리의 태세는 좀 더 강해진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자.
‘여성 할당제’가 호의적 차별은 아니다. ‘채용, 승진, 프로젝트 기회, 위원회 참여’ 등에서의 할당제란 그동안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니 잠시 일부러라도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잘 자라고, 크게 자라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개인에게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여성 그룹에게 보내는 ‘성장의 압력’이다. 할당제가 적용되는 동안 기량을 입증하지 못하면, 더 크게 자라지 못하면, '들러리'나 '깍두기' 역할에 안주했다가는, 앞으로의 기회가 더 적어질 수도 있다. 여성이 자라지 못하면 우리 사회도 크게 못자란다.

영화 <지아이 제인>에서 해병대에서 남성과 동일한 자격을 얻기 위해 겨루는 해군이 나오지요? 좀 의아한 설정, 선정적이기 위한 설정 이었지요. 영화 만들기를 위한 설정이라고 할까요? 그 영화에서 오히려 있음직했던 것은 상원의원으로 나오는 앤 반크로프트 역이였지요. 거친 정치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벌하고 잔혹하고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고 카메라만 의식하는 여성 상원의원... 경계 대상입니다.  '호의적 차별 현상'을 악용하는...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서 맥 라이언이 분한 헬리콥터 조종사(의료헬리콥터)는 훨씬 더 그럼직한 상황으로 그려졌습니다.

혹시 '여성 영웅 만들기'라는 정치적 의도의 '호의적 차별' 아니었나 라는 의문상황을 파헤친 영화... 영화를 통해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잘 그려내기도 했지요.    


여성에 대한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면서
오히려 우리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호의적 차별을 해주어 보자.
“집에 좀 일찍 들어가셔야지요. 아이들 학교에 가보세요. 접대 방식을 문화적으로 바꿉시다. 그동안 스트레스 받는 업무를 많이 했으니 오히려 잠깐 뒤로 물러서 보세요. 승승장구는 길지 않아요, 잘 나갈 때 더 부드러워지세요. 도움을 청하세요, 협조해 드릴게요, 업무를 나눕시다, 책임을 같이 집시다.” 등 등.

언제나 그렇듯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세상살이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고 줏대가 필요하고 끈기가 필요하고 책임감이 필요하다. 내가 그러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후배 여성들이 호의적 차별을 경계하기를 무척 바란다.    우리 꿋꿋하게 자라자.

*** 090117 새벽, 김진애, 딸들의 일자리 걱정을 같이 하는 중...

제가 여성이기도 하거니와 두 딸을 가진 입장에서 우리 여성들이 꿋꿋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오늘 새벽 이 주제가 생각난 것도 딸들 때문입니다. 요새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취업난에 시달리고, '대학 5학년'도 마다 않고, 수없는 응모와 탈락을 거듭하고 있지요. 친구들이 모이면 '취직, 경제적 독립'이 최고의 화제라네요. '연애 이야기'도 '일자리 이야기'보다 우선순위가 아래라니까, 나름대로 좋은(?) 현상이라고 할까요...  

경제가 나빠지면 사회전체적으로는 저소득층에 제일 먼저 피해가 가고, 젊은 층에게 피해가 가고, 또 여성에게 피해가 가지요.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여유가 있고, 경력층은 '아직' 시간이 조금 있고, 그래도 남성은 여성보다 발탁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요. 여성을 '예비군'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지요.  

이 와중에 '호의적 차별'을 걱정하는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만, 일자리를 얻은 행운의 여성들은 부디 살아남고, 재목으로 크고, 큰 재목으로 잘 쓰이기 바랍니다.
일자리 찾을 때도 '호의적 차별'을 혹시 기대할 지 아닐지에 대한 인상이 크게 작용하기도 하지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차별'을 묵묵히 견디기만 하면 또 안되지요. 그
렇게 되면 '악의적 차별'에 계속 시달리게 되니까요. 일하는 여성이 견뎌내야 하는 것은 이런 '가외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떡합니까, 우리가 이겨내야지요. 

지난 달인가, 프랑스의 어떤 여성 장관이 출산 후 닷새 만에 복직했는데, 하이힐을 신고 출근했다면서요. 그것도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는데... 이런 건 상식 없는 짓이지요. 그 여성장관 개인의 사정이 어떠하든 의욕이 어떠하든, 여성 전체에 폐 끼치고 우리 자식들에게 폐 끼치고 우리 가정들에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지요. 좀 '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건대... 여성들의 용기와 줏대와 생존을 위하여,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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