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아이가 자폐증이 있다. ‘꽃 미소년’에 말이 없어 우리 가족에게 아주 인기 높은데 엄마 아빠는 고민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 여섯 살 소년과 은근히 통한다. 마치 그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 자기 세계에 흠뻑 빠져 ‘금지된 장난’을 하는 듯하던 그 시절.

요즘 이 소년이 매혹된 것은 고래와 상어 등 바다 속 이야기란다. 설날에 만두를 빚다가 만두피 두 장으로 물고기를 만들어 비늘과 지느러미도 만들고 눈과 입과 콧구멍을 만들고 바람을 넣어 주니 이 소년의 빛나는 탄성, “우와!”

언젠가 이 소년은 자기 세계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자기 세계에서 길어 올린 그 무엇으로 더 큰 세계와 통하리라. 그런 믿음으로 내가 쓰는 여섯 가지 자라기 방법들.

하나. 아, 궁금해! 묻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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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모든 자라기의 원동력이다. 질문은 호기심의 표현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맘껏 하면 오죽 시원한가.

어릴 적 질문 꽤나 많은 나를 어른들은 질색을 했던 모양이다. “넌 참 이상하구나” 라는 어른들의 말에 질려서 나는 한동안 입을 꽁꽁 닫았다. 답을 못하겠으니까 나를 이상한 아이로 몰았던 거라는 건 나중에 커서야 깨달았다. 나를 포함, 모든 어른들은 반성할 일이다.

내가 책 세계로 도망갔던 것은 마음껏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열 살 무렵 세 권을 달달 외우도록 수십 번 읽었다. 『그리스로마신화』, 『플루타르크 영웅전』, 『공자일대기』. 글자 빽빽이 박힌 어른 책들이었다.

나는 요새 아이들이 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는지 알겠다. 아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복잡다단한 스토리를 기막히게 소화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잇고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둘. 아, 멋져! 나도 해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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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팬이 되어야 한다. 팬은 마니아로도 통한다. 팬이 되면 스타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진다.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 보다는 작곡도 하는 음악인이 좋고, 몸짱 배우보다는 연기짱 배우가 좋고, 이왕이면 상상력과 창조성 넘치는 복합적인 인물이 좋다.

나의 첫 스타는 괴도 루팽이었다. 『기암성』 추리소설을 초교 3년 시절 ‘내 돈’으로 혜화동 로터리 서점에서 샀던 것은 아주 행복한 추억이다. 루팽은 상상력 넘치는 도둑이었고 스타일도 멋졌고 사랑도 잘 했다. 과학적으로 암호 해독도 잘하고 문학적인가 하면 무기도 잘 다루고 투자도 잘하고 정의감도 있었다. 또 나는 우리나라 SF 만화 첫 세대를 개척한 『라이파이』(김산호 작) 마니아였다. 고구려 무인처럼 두건 질끈 동여맨 ‘라이파이’도 근사했지만 나는 악인으로 나오는 ‘녹(綠)의 여왕’에 매혹되었다. 으음, 여자도 아주 근사한 악인이 될 수 있구나! 멋지잖은가.

그렇다고 내가 커서 괴도나 악인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괴도 루팽과 녹의 여왕의 멋진 능력에 반했던 것은 아주 좋은 자극이었다. ‘나만의 스타’를 만들어보자.

셋. ‘잘’놀면 잘 큰다!

모르는 사이에 공부 되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지겹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한 건지 아닌지 모르게 쌓이는 공부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나의 영어 실력은 순전히 AF(K)N 라디오 덕분이다. 중고교 내내 끼고 살았다. 우리말 방송은 너무 잘 들리므로 방해가 되어서 생각해낸 방식인데,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 드라마 내용이 귀에 들려서 깜짝 놀랐다. 다음 프로를 기다리는 내가 어떻게나 기특하던지.

MIT 유학 중 큰 딸은 두 살부터 여섯 살 까지 공립 유아원(Nursery School)에 다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얼마나 잘 놀던지. 그렇게 놀면서 영어는 물론, 글짓기와 만들기는 물론,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팀워크 하는 방식을 깨쳤다. 엄마인 내가 놀아 준 것보다 훨씬 더 유효했던 유아원 놀이공부, 주말이면 나는 각종 놀이를 실험해 보는 어린 딸의 실험 모르모트 노릇을 하곤 했다.(가장 기억나는 놀이는 낚시 놀이. 같이 목욕을 하면서 나는 고기, 딸은 낚시꾼. 입벌리고 낚시에 걸려주는 묘기를 발휘해야^^. 물 속에서 발가벗고 하는 놀이라 더욱 신나는 놀이.) 우리는 놀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넷. 아, 발표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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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만큼 긴장되는 것은 없다. ‘공적인 자리’에 서는 경험은 빨리 시작하고 많이 해보는 것이 최고다. 땀 뻘뻘 나고 얼굴 빨개지는 경험이 우리를 키운다.

나는 중 2 시절 이혜성 국어 선생님(나중에 대학 교수와 청소년상담원장을 역임하셨다)께 정말 감사드린다. 매 시간마다 3분 발표를 시키셨던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나자 모든 학생들에게 한차례씩 돌아갔다. 그 3분 발표 체험이 어떻게나 두고두고 남는지 모른다.

엄마아빠 앞에서 발표하자. 친구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자. 방학 계획서도 입 밖으로 발표하자. 생일 파티에서 멋진 감사 인사를 해 보자. ‘건배’ 말도 해 보자. 어른들께 절할 때 자기 색깔 나는 창조적인 인사말을 하자. 입 밖에 내면 진짜 자기 것이 된다. 사람들의 반응을 느끼면 무언가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람과 기를 나눌 때 가장 살 맛 난다고 느낀다. 발표를 위한 긴장은 아주 요긴한 긴장이다.
(사진. 대학로 골목에서 만난 중학생들. 외국인과 만나서 했던 대화의 긴장,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

다섯, 홀로 설 거야! 독할 때는 독한 결심을!

열여섯 살 나의 결심. “1년 동안 소설 안 보고, TV 안 보고, 영화 안 보고 오직 공부만 하리라!” 그리고 독하게 지켰다. ‘홀로 서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해내리라는 결심이었다. ‘내가 벌어 내가 살래’는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큰 딸이 독한 결심과 독한 실천을 한 것은 스물두 살이 되어서다. 나보다 여섯 살 늦었지만 그 결심을 지킨 것이 가상하다. ‘홀로 서기’의 싹이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은 진실이다. 작은 딸은 아직 한번도 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다.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아서 일까? 어떻게 하면 독립해서 사는 그 어려움과 뿌듯함에 대해서 절실하게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여섯, 나의 프로젝트는 뭘까?

그래서 작은 딸과는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건지’ 사업 구상을 한다. 학교 성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구상이다. 내 경험상 성적 모범생은 별 재미없는 사람이 될 위험이 높다. 학교 공부 잘하면 선택의 폭도 줄어든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교수나 의사 밖에 못하잖아요?” 사람 사는 세계에는 훨씬 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많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의 사람이 아니라면 학교 공부는 ‘정도껏’ 하는 게 오히려 인생살이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오히려 구체적인 ‘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딸과 앉아서 프로젝트 구상을 한다. 딸이 스스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찾게 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도 던진다. 어떤 사업이 좋을까?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그 프로젝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너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가려면 너만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단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도 날개 돋는 듯 할 것이다.

엄마 아빠는

-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을 키워줄 것,
- 팬과 마니아 되기를 축복해 줄 것,
- 모르는 새 실력 쌓이는 매일매일 놀이를 할 것,
-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긴장의 그 순간’을 마련해 줄 것,
- 스스로 결단을 하도록 홀로 서기를 강조할 것,
- 어떻게 벌어먹고 살 것인지 스스로 프로젝트 구상을 하게 할 것.

이렇게만 하면 우리 아이들, 쑥쑥 잘 자라지 않을까?

사실, 아이들 스스로 쑥쑥 자라는 것 보면서, 우리 부모도 같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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